2017년 3월 15일 수요일

군대

기록삼아 남겨보는 군대이야기 1

나는 공군을 갔다왔다. 대학교1학년즈음 어딜갈지 고민하기 시작해서, 휴가가 많고 상대적으로 편하다는 이유로 공군을 선택했다. 기억력이 좋은편이 아니라서 지나온 삶의 많은 부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다른 것들에 비해 군대에서의 생활은 기억이 나는 부분이 많은편이다. 훈련소의 시작부터.
진주에 있었던 훈련소에 도착하고, 아버지의 눈물, 엄마의 눈물.(아버지의 빨간 눈시울은 그전에도 본 적이 잇지만 나를 위한 붉어진 눈시울은 인상적이었다.)
모퉁이를 돌자마자 시작된 조교의 욕설. 천막밑에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조교의 욕설을 들으며, 했던 생각들. 그리고 첫날밤.

훈련은 고되었다. 별 생각없이 선택한 여름의 더위와 고된훈련은 내 입맛을 뺐었고 덕분에 살을 꽤나 뺄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기억나는 단편적인 기억은 많지만, 기록을 남길만한 일은 없는 그런 나날들.
그 중 기억나는 동기는 준우, 박준우 였지? 나보다 나이는 많지만 죽이 잘 맞았던 군대동기. 소유진의 친척이고 일본어를 잘했던 동기. 계속 연락하자고 지내자고 했는데 결국은 연락을 하지않았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내 인생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물론 내 노력도 그런 운을 만드는데 보탬이 되었겠지만.
공군의 장점은 대도시에 공군기지가 있다는것이다. 훈련생들은 각자의 연고에 있는 공군기지를 가고 싶어했다. 가장 경쟁률이 높았던 곳은 아마 서울경기권이겠지만 대구도 만만치않았던걸로 기억난다. 공군만 그랬던건지는 모르겠지만 공군은 특기를 뽑고 그 특기에 대한 공부를 시킨다. 그리고 시험을 쳐서 성적순으로 각자의 지망에 따라 배치를 했다. 나는 당연히 대구에 있는 11비행단을 지원을 했나? 모르겠지만 운이 좋게도 11비행단에 있는 공군군수사령부로 배정받게 되었다. 군수사는 11비안에 있긴 하지만 비행단과는 다른 별도의 조직이었다. 공군전체의 보급품을 다루는 곳으로 총기만 빼고는 모든 물자가 있었다. 운이 좋았던것이겠지?

훈련소만 마치면 끝일것 같았던 군대생활도 자대를 배치받으면서 진정으로 시작이 되었다. 2주 빨리 훈련소을 나간다고 으시대던, 훈련소만 나가면 군대생활끝인거 처럼 굴던 사람들. 나도 그중에 하나였고 내 밑에 군번들보면서 으시대던것들이 다 우스운것이었다.
자대배치첫날, 각 내무반의 반장(?)들이 각자의 신병을 데려가던 그날의 기억. 난 마지막으로 뽑혔던거 같다. 뚱뚱했기에 자존감이 없었던 내가 그렇게 기억을 왜곡한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환영받지는 못했던거 같다. 나말고 다른동기들이 다 뛰어났기에. 영민이, 성화, 주완이.

 군대란, 참 이상한곳이었다. 자기들만의 룰을 만들고 자유를 억압하는게 당연하다고 여겨지며 궁금한것에 대해 질문을 하는것조차 개념없다고 여겨지는곳. 그 집단에 속해있으면서 그런것들에 대해 당연하게 여기고 나도 어느새 내 후배들에게 강요하게 되는곳. 그리고 거기서 배운것들을 군대이후에도 당연하다는듯이 적용하게 되는것. 회사에 있으면서 선배가 어떤 물건이든 들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제가 들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자신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사회의 상명하복의 병폐도 다 군대의 연장선이겠지.

 신병의 자리는 내무반에서 제일 문에서 가깝고 TV에서는 제일 먼 자리였다. 문을 기점으로 양면에 침상들이 있고 가운데 통로는 복도와 연결된 통로. 그 침상에 허리는 꼿꼿이 손은 주먹을쥐고 무릅에 각잡고 앉아있으면서 졸지도 말아야되며 TV를 보려고 고개를 돌려도 안되며, 티비소리에 웃어도 안되고 그냥 멍을 때려도 안되는게 신병의 자세였다. 몇시간이고 아무일도 없이 가만히 앉아있는게 얼마나 힘든지... 그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졸려하는 모습이 보이면 '빠졌네' 라는 선임들의 얘기가 들리고 낙인이 찍히는것이다.

기억나는 상황1. 내무반을 배치받고 나면 인적상황을 기재해야한다. 당시 각 내무반에는 행정을 담당하는 사병이 존재했는데 상병의 일정시기가 되면 그 일을 맡고 몇개월간 했어야됐었다. 내가 신병일때의 행정병은 성격 더럽기로 유명한 사마귀를 닮은 모상병. 인적사항을 기재하다가 뭐라고 적을지 몰라서 질문했더니 어이없다는식으로 빤히 노려본 기억이 난다. 질무나는것자체가 버릇이 없단다.

 나는 보급병이었다. 우리는 보급병이었다. 군수사였으니.
군수사령부에는 각 물자별로 창고를 나눠어놓고 창고를 1B, 2B 라고 호칭하였다. 나는 그중에서도 힘들다고 소문난 2B에 배치되었다. 2B가 힘든이유는 다른게 아니라 전투화, 전투복, 비누등등의 일반물자를 담당하였고 한번에 들어오는 물자의 양이 엄청났다. 한번 물자가 들어오면 갯수로 적게는 몇천에서 몇만개가 들어왔으며, 물건을 놓을자리를 창고내에서 확보하고(이미 많이 불출된 물건을 다시 최대한 높게쌓아 빈공간을 만들었다) 새로운 들어온 물자를 키 높이의 3-4배의 높이로 쌓는다. 이 과정이 완전 노가다이다. 일을 도와주시는 인부분들과 일을 나누어하긴했지만.
 처음 내게 배정된 창고는 2B창고가 아니었다. 외곽지역에 있는 다른 창고였다. 신병을 테스트해본다고 나와 주완이가 그 창고에 인사하러갔는데 그 때 당시는 몰랐지만 창고주임과 선임들은 나를 점찍었다고 했다. 왜냐하면 주완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덩치가 컷기에. 하지만 그 판단은 족구 한게임에 완전히 바뀌었다. 주완이는 지금 생각해도 참 열정적인 동기였다. 그게 일이든 운동이든. 빠릿빠릿하고 몸을 아끼지않았다. 나라도 그랬을것이다. 나와 주완이라면 당연히 주완이.
 뭐 과정이야 어쨌든 2B에서의 생활은 나쁘지않았다고 본다. 2B의 선임들은 배울점이 많았다. 인간적으로든 업무적으로든. 한명 빼고.
 지금은 다들 이름이 기억나지않는다. 최성인병장은 창고에서 바로 내 맏고참이었고 내가 개인적으로 존경하기에 기억이 남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