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2일 수요일

Sep 12

Usually Internet says that try to write a diary in English. It would help a lot to your skill. So this is the first day for this diary. I hope this habit keep continue until I am satisfied enough for my English.
Actually I love writing something. I wanted to be a novelist, especially in Science Fiction area. I liked to imagine some unrealistic things since I was a kid. So writing a diary wouldn't be hard but It feel like writing this in English, that's not easy.
Anyway today it was 2nd day of this term. Whenever I go to the campus, I feel like I become younger like those walking on the campus.
I bet I'm definitely younger than others in my age in terms of appearance or thoughts. But I'm still in my 30s. This is my last term and I'm gonna graduate this year and get a visa and try to get a job. That's all. What I have to do is clear, how I have to do is blurry. I don't want to be skeptical or depress but sometime I should face the situation directly. On my way home and when I was in the class room, I saw the beautiful view through the window. It's crystal clear and blue sky and twinkle lake and the island that I could see across the lake. I wish I could walk around the lake with Hany. 
For now, I feel good, I feel like I can get through anything but I am not so sure when that time has come I can manage to get over it without Hany. 

2018년 3월 28일 수요일

Final Fantasy 15

Final Fantasy 6,7,8,13 까지 남들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Final Fantasy를 어느정도는 즐겨왔다고 말할수 있을것이다.
파이널 판타지라는 이름자체가 설렘을 주는 이름이었는데, 언젠가부터 그저그런, 잘 나오면 좋고 잘 안 나와도 그러려니하는 평범한 느낌을 주게 되어버렸다.
아마 그게 10인가 11편인가 부터일 것이다.
13에서는 절정이어서, 일직선 진행에 이해하기 힘든 스토리, 매력없는 캐릭터등으로 중간에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15도 명작은 아니지만 리뷰어나 일반적인 평가는 나쁘지 않은 편이긴 하지만 그렇게 기대되지는 않았다.

대학원 생활에서 시간이 꽤 있기에, '언젠간 할 게임목록' 에 있는 FF15를 플레이하고 엔딩을 보게되었다.
일단 엔딩을 본 것 자체가 나에게는 평작이상은 된다.
쉽게 질리는 성격탓에 재미가 없으면 빨리 포기하게 됨에도, 어느순간 이후로는 재미를 느꼈던것이 엔딩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를 내리자면 기획자의 아집이 들어간 어느부분에 있어서는 아주 형편없고, 특출난 구석이라고는 그래픽이 다인 게임이라고 평가를 내릴수 밖에 없다.
전투시스템도 재미없지도 않지만, 그렇게 재밌지도 않은 그냥 그런 느낌에.
스토리는 일본식의 평범, 게임구성은 욕이 나온다.
몇 가지 점에서 기획자의 아집이라고 밖에 표현할수 밖에 없고
이부분이 게임전체를 망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몇 있는데

첫번째로, 이해할 수 없는 스토리 진행

사실 결혼식을 위해서 왕자와 친구들이 여행을 떠나게 하는 도입부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여행이라는 테마를 살리기 위해, 같이 차를 타고, 명소를 돌며 사진을 찍고 관광을 하는 느낌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는것이 느껴지지만, 웃긴건 초반 스토리에서 얼마지나지 않아
왕성이 침략당하고, 아버지인 왕이 죽었는데도 게임의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는다.
차를 타고 달리다보면, 글라오디스는 책을 읽고, 프롬프트는 어디가서 사진을 찍자고 졸라대는데 이게 나라가 망하기 전이나 어울리지 나라가 망했는데도 똑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으니, 감정이입이 될래야 될수가 없다.
심부름(이라고 밖에 부를수 없는 사이드퀘스트)를 위해 맵을 뛰어나닐때도 신난다 고 이것저것 지꺼리는걸 보고 있자면 열불이 나는데, 왜 이따위로 만들었을까 의문이 남.
차라리 깔끔한 진행을 위해, 스토리상의 왕궁침략을 뒤로 미루던지...

두번째로, 도무지 깊이라고는 없는 퀘스트

메인퀘스트야 나름의 스토리가 있지만(그마저도 별로긴 하지만), 사이드퀘스트는 정말 의미없는 경험치 쌓기, 돈벌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개인적인 취향은 목표의식을 주고, 의미를 가지는 사이드 퀘스트를 재밌게 하는편이고, 노가다를 아주 싫어하는데, FF15는 정말 모든 사이드퀘스트가 게임몰입을 위해 도움이 안된다. 길 가다보면 누군가가 도와달라고 소리치는데 가보면 그냥 부상당한(당했다고 주장하는) NPC가 앉아있는데, 포션 하나주면 퀘스트 하나종료, 문제는 똑같은 내용의 몇 초짜리 사이드 퀘스트가 맵 곳곳에 널려있음. 부상당한 NPC1,2,3... 이런식으로..
기껏 스토리가 있는거라고 해봤자, 사망한 헌터의 인식표를 찾아주는건데 어느 맵지역에 가서 작게 반짝이는 인식표 주워서 전해주면 끝.
거기에 구색뿐인 헌터퀘스트는 어느지역에 가서 몹잡으면 끝.
보석상이 하고 싶다는 어느 기자에게는 또 어느지역에 가서 반짝이는 광물주워주면 끝.
이딴식으로 넣을거면 넣지 말지...

세번째로, 일본특유의 희생을 강요하는 스토리.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는 네가 죽어야 된단다.
주인공이 자기를 희생해서 세상를 구하고 죽는게 엔딩인데...
사실 별 감동이 없다. 죽는 이유야 그럴사하니 만들어내면 그만이고,
최'악'을 없애기 위해 희생해야 된다는데 뭔 할말이 있겠냐만은
사실 개연성이 부족하고, 그냥 좀 있어보이기위해 주인공을 죽이는 시나리오를
만들어냈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누군가를 죽이지않고도 감동적인 스토리는 가능하고,
누군가가 죽더라도, 죽을수 밖에 없는 이유와 상황이 그려지면
납득이 가는데 FF15에서는 이유가 없다.
왕가의피 이 하나로 모든 설명이 된다.
그러다보니 주인공이 죽어서 여운이 남는게 아니라,
엔딩을 봤다, 게임을 끝냈다라는 안도감이 든다.
더이상 안해도 되겠구나.

네번쨰로 깊이 없는 전투시스템.
전투시스템에서 변수를 만들어내는건 게임후반부로 갈수록
적을 뒤에서 공격에서 연계를 이끌어 내는게 전부인데...
플레이어의 숙련도가 개입할 부분이 별로 없고, 어떤 전략을 생각해야 할만큼의
깊이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
다수의적을 상대로 요리조리 피하면서 공격버튼을 꾹 누르고 있는게 재밌을리가 없지.


전체적으로 기획자의 상상력의 빈곤을 들어낸 게임.
그래픽이라던거 거대한적을 싸우는 느낌은 괜찮았으나
스토리도 시스템도 퀘스트도 범작이상은 아닌거 같다.
누군가에게 추천을 한다면, 다른거 할게 없을때 한번 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사실 이외에도 똑같은 구성의 봉인던전이라던지, 매력없는 캐릭터등 깔 거 많은데
귀찮아서 적을마음이 생기질 않는다.

기록삼아 적어보는 내 인생 얘기

운 좋은 인생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는.
한편으로는 나쁜일은 기억하지 않으려하기때문에, 운좋은 인생처럼 생각이 들수도 있다. 라는 생각도 든다.

남들도 다 똑같을까? 어렸을적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제일 오래된 어렸을적의 기억은 아주... 어릴적 아마 초등학교(그 당시는 국민학교)를 입학적에 대구 달서구 어디의 주택에 살 던 기억이다. 특정한 사건이 기억나는 것이 아닌 그냥 주택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 뒤는 송현동의 아파트에 외할머니와 살 던 기억.
가끔 그 동네를 다시 찾아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일이 있어 지나갔던 기억만 난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가보고 싶다.

그 뒤로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평범한 삶을 살았다.
어쩌면 평범하지 않을지도.
초등학생일때는 빚쟁이들이 집을 찾아와, 불을 끄고 없는척 할때도 있었는데.
어머니가 짜장면을 사주시면서 눈물을 훔치실때도 있었는데,
중학교, 고등학교 들어 아빠의 사업이 잘 되고 나서는 나름 큰 평수때의 집에서도 살고
그냥 하고 싶은거 못하지는 않으면서 살았던거 같다.
대학교 1,2학년때가 우리집의 최절정일때가 아닐까
아빠 말로는 월수입이 천일때도 있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 혜택을 온전히 누리지는 못한거 같다.
누나는 대학교도 두번 다니고, 프랑스 유학도 다녀오고 했지만 나는 보내준다는거도 마다하고 그냥 혼자서 공부했다.
그냥 어차피 토익을 위해서라면 유학 안가도 혼자서 할 수 있는데 돈이 아까웠던거 같다.
그러고보면 인생의 중요고비때마다, 뭔가 영어시험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는거 같네.
대학교졸업시즌 취업을 위해서는 토익을 공부했고,
회사 다니면서 캐나다 대학원 입학을 위해서는 IELTS를 공부하고.

토익 공부할떄도, 목표하던거 보다 빠르게 점수를 취득해서 거의 8개월을 놀았는데, IELTS도 마찬가지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난 머리가 좋은편이라고 항상 말하곤 하는데, 그 이유가 다 저런데에 있다.
남들은 힘들다고 하는데 시험을 치면 점수가 잘 나왔거든.

토익도 3개월인가 공부하고 2번째인가 3번째 시험만에 800점 중반대가 나와서 이정도면 됐다하고 그만 뒀고, IELTS도 3개월 공부하고 첫시험에 Overall 7.0이 나와서 그만뒀다.
점수를 따고 쭉 계속했으면 잘 했을텐데 말이지.

대학교도 내 스스로 자격지심이 있긴하지만, 물수능덕분에 성적 잘 나와서 영남대턱걸이 했고, 회사도 SDS로 마음먹은 뒤에는 남들 100개씩 지원할때, 5군데 지원해서 그중 유일하게 서류통과하고 SSAT까지 통과한게 SDS. 물론 제일 가고 싶었던 회사.

캐나다행을 결정한거도 IETLS 점수가 이렇게 생각보다 잘 나오지않았으면 불가능했겠지.

그래서 나스스로 운이 좋다고 말하는것이다.
어쩄거나, 내가 원하는바를 이루고 살았으니까.
물론 잘 안되게 있는데, 연애.
이 얘기는 나중에 쓸 시간이 따로 있을것이다.

항상 내 인생을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나 대기업 다녔다. 외제차 타고 다녔다.
지금은 캐나다 대학원다니는중, 졸업후엔 이민을 꿈꾼다.
누군가보면 아무렇지도 않고, 누군가에게는 괜찮은 인생으로 보일 수 도 있고.

주변하고 비교해보면, 그냥 평범해 보이는 인생.
하지만 칭찬받고 싶었다. 누군가가 나를 우러러봐줬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타인에게서 인정을 받고 싶어하고, 거기서 만족을 얻고 싶어한다는걸 깨달을때
내가 내 인생에서 뭔가 불만족을 느끼는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지도

2018년 첫 일기

시간이 참 빠르다.
언제 2018년 4월이 되었을까?
다음주 월요일에 발표가 하나 남았는데, 그거 제외하고는 평온한 학기였다.
1월에 시작한 학기가 어느새 2주만 있으면 종료된다.
시간이 너무 너무 빠르다는 말밖에 할 게 없다.

언젠가 다시 볼 날을 위한 기록으로 일기를 남기기로 했는데,
반년에 고작 3개이다.
계획으로는 매일 쓰기로 했는데, 너무 게으른거 아니냐.

요즘 제일 많이 하는 고민은 졸업후 과연 어느 지역으로 이동하느냐 이다.
선택지는 토론토, 오타와.
토론토는 제일 큰 도시답게 잡이 많고, 단점으로는 집값이 너무너무 비싸다고 한다.
(아직 직접적으로 알아본건 아니지만)
오타와는 토론토의 반대.
집값이나 기타등등 살기는 좋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도시이다보니, 일 구하기가 힘들지도 모른다.
물론, 당장 급한건 돈을 벌고 생활이 안정되는 것이니 토론토를 가는게 맞는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하는결정이 앞으로 캐나다에서의 삶을 결정지을거 같은 느낌에 쉽사리 선택하기가 싶지않다.

그 외에는 특별한 이야기거리가 없다.

영어?
영어가 늘었으면 좋겠는데, 물론 한국에 지낼때에 비하면 일취월장까지는 아니고 성장한것은 분명하나, 아직 갈길이 멀다. 요즘 느끼는것은 스피킹이 너무 안되는거 같다. 물론 Adiba 하고 얘기할때 Lam, Jenny 하고 이야기 할때등 어떻게 이야기하긴 하지만 아직까지 무언가 내 생각을 짜임새 있게 전달하기는 매우 부족하다고 느낀다. 한국에 있을때 오히려 영어에 더 집중하고, 단어를 외웠는데 여기오니 그런 노력을 모조리 사라졌다.

다음주 월요일의 발표가 끝나면 이제 계획을 잡고 천천히 해보려고 하지만, 이 생각은 저번학기를 마쳤을때에도 했는걸...
그리고는 결국 열심히 놀았다.

이번에는 열심히 해야지.
이렇게 일기도 쓰고 있지않은가...

2017년 6월 29일 목요일

2017년 6월 29일

2017년 6월 29일

퇴직원을 책상에 둔 채로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PC자산반납신청을 하고, 박스를 가져와 포장을 하기 시작했다.
마음속에 분노라든지, 8년간의 회사생활을 접는다는 슬픔은 없었다.
아마도 휴직계를 내면서 이미 돌아오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했기에
나에게는 퇴사가 조금 앞당겨진 것 뿐이었다.

뀰에게는 달랐을까?
뀰은 면담 한번 해보지 못하고 나의 여자친구기때문에 결혼상대자이기 때문에
휴직 반려가 결정되었다.
나는 원래 별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부당하다고 느껴지지만, 결과가 동일하다면 그냥 대수롭지
않게 받아드리고 넘어간다.

하지만 뀰은? 나에게 묶여서 덤으로 취급당하고 반려까지 당한 뀰의 생각은 어땠을까.


허수석님과 출하의 미래들과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뀰에게서 연락이 왔다.
식사가 마치면 회사앞 까페로 잠깐 올 수 있냐고 물었다.
왜냐고 물으니 미공감의 위원과 함께 얘기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최근 선출된 미공감의 위원은 원래 뀰과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가는길에 의문이 들었다.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늘 욕하는 미공감의,
위원이 뭘 할 수있을까?

까페에 가니 이미 뀰과의 얘기는 마치고 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모양새였다.
미공감의 위원의 얘기는 이랬다.
나하고 묶어서 반려당한 처세는 너무하다. 부적절하다. = 동감
전사까지 가지도 않고 사업부 차원에서 겁먹고 반려한거같다. = 동감

위원으로 본인이 이의를 제기한다고 했다.
그리고 하니는 여행갔다와서 다시한번 휴직계를 제출하는게 이야기의 골자였다.
난 부정적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돌아올 생각도 없는데.
하지만 뀰은 달랐다. 부당하고 어이없는 회사의 처우에 한번 반기를 들어볼 생각이었다.
뀰이 그렇게 한다면 나는 큰 이의가 없었다. 게다가 미공감에서 도움을 준다면야...

회사에서 짐을 정리하고 나서는데, 김재선배가 배웅을 해줬다.
김재선배, 첫 맏선배. 배울점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했고 '그런것'을 닮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것' 들은 내 것이 아니었다. 닮으려 해도 닮을수 없는 것들이었다.

게이트를 나서서, 앞에서 인사를 하는 데 김재선배의 얼굴과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렇게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었나?

당황스럽지만 고마운 감정. 나도 울컥하는 느낌이 올라왔다.
문득, 지도선배 할 때의 감정이 밀려왔다.

사실 후배들과 헤어지는게 슬프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단상에 서서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하는데 뭔가 밀려오는게 있었다.
먹먹한 감정들.

나는 회사를 떠나는데 있어서 나는 슬프지않았다. 헤어진다는 느낌이 들지않았다.
언제가는 만나지않을까 하는 생각들.

만나지 않더라도 요즘 같은 세상에 내가 벗어난다 하더라도 그게 끝일까하는 생각.
또는 내가 원래 정이 없거나...





2017년 6월 28일 수요일

2017년 6월 28일. 퇴사권유

원래 퇴사를 할 생각이었다. 휴직계를 내고 2년후 캐나다에서 자리를 잡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퇴사를 하려고 했다.

처음 회사에 대학원 합격을 했고, 휴직계를 내겠다고 PMO 수석에게 말한게 5월말. 그리고 일주일후 실제로 휴직계를 제출했다. 
휴직계를 내고 며칠후, PMO수석에게 전화를 받았다. 대학원을 포기할 수 있겠냐고, 이년후 돌아오겠냐고 물어봐서 속으로는 뭔 개소리지 싶었지만, 대학원은 포기할 수 없다, 그리고 이년뒤 돌아올 생각이다라고 말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서 오늘 6월 28일에 이르러 사업부 인사과 차장에게 전화가 온다. 휴직계가 반려되었단다. 
물론 그전에 PMO 수석에게 미리 휴직이 어려울수도 있겠다는 언질을 들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만은 기분이 더러운건 어쩔서 없다.  사유가 뭐냐고 물으니 인력이 부족한데 휴직은 해줄수 없다고 한다. 역시나 개소리.
내 진학휴직만 반려되었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뀰의 어학휴직도 반려되었다고 한다. 

문득 어제 조팀장님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 너희가 패를 너무 다 보여줬다'

순진했다. 회사에 제도가 있고 자격이 되면 당연히 이용할 수 있을줄 알았다. 
회사를 하나의 인격이 있고, 인정이 있는 생물처럼 착각을 했다.

회사는 가장 효율적으로 돈을 벌고 아낄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냥 나는 회사에 더이상 효율적인 자원이 아니었을뿐인 것.

그렇게 퇴사가 결정되었다.

2017년 3월 15일 수요일

군대

기록삼아 남겨보는 군대이야기 1

나는 공군을 갔다왔다. 대학교1학년즈음 어딜갈지 고민하기 시작해서, 휴가가 많고 상대적으로 편하다는 이유로 공군을 선택했다. 기억력이 좋은편이 아니라서 지나온 삶의 많은 부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다른 것들에 비해 군대에서의 생활은 기억이 나는 부분이 많은편이다. 훈련소의 시작부터.
진주에 있었던 훈련소에 도착하고, 아버지의 눈물, 엄마의 눈물.(아버지의 빨간 눈시울은 그전에도 본 적이 잇지만 나를 위한 붉어진 눈시울은 인상적이었다.)
모퉁이를 돌자마자 시작된 조교의 욕설. 천막밑에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조교의 욕설을 들으며, 했던 생각들. 그리고 첫날밤.

훈련은 고되었다. 별 생각없이 선택한 여름의 더위와 고된훈련은 내 입맛을 뺐었고 덕분에 살을 꽤나 뺄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기억나는 단편적인 기억은 많지만, 기록을 남길만한 일은 없는 그런 나날들.
그 중 기억나는 동기는 준우, 박준우 였지? 나보다 나이는 많지만 죽이 잘 맞았던 군대동기. 소유진의 친척이고 일본어를 잘했던 동기. 계속 연락하자고 지내자고 했는데 결국은 연락을 하지않았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내 인생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물론 내 노력도 그런 운을 만드는데 보탬이 되었겠지만.
공군의 장점은 대도시에 공군기지가 있다는것이다. 훈련생들은 각자의 연고에 있는 공군기지를 가고 싶어했다. 가장 경쟁률이 높았던 곳은 아마 서울경기권이겠지만 대구도 만만치않았던걸로 기억난다. 공군만 그랬던건지는 모르겠지만 공군은 특기를 뽑고 그 특기에 대한 공부를 시킨다. 그리고 시험을 쳐서 성적순으로 각자의 지망에 따라 배치를 했다. 나는 당연히 대구에 있는 11비행단을 지원을 했나? 모르겠지만 운이 좋게도 11비행단에 있는 공군군수사령부로 배정받게 되었다. 군수사는 11비안에 있긴 하지만 비행단과는 다른 별도의 조직이었다. 공군전체의 보급품을 다루는 곳으로 총기만 빼고는 모든 물자가 있었다. 운이 좋았던것이겠지?

훈련소만 마치면 끝일것 같았던 군대생활도 자대를 배치받으면서 진정으로 시작이 되었다. 2주 빨리 훈련소을 나간다고 으시대던, 훈련소만 나가면 군대생활끝인거 처럼 굴던 사람들. 나도 그중에 하나였고 내 밑에 군번들보면서 으시대던것들이 다 우스운것이었다.
자대배치첫날, 각 내무반의 반장(?)들이 각자의 신병을 데려가던 그날의 기억. 난 마지막으로 뽑혔던거 같다. 뚱뚱했기에 자존감이 없었던 내가 그렇게 기억을 왜곡한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환영받지는 못했던거 같다. 나말고 다른동기들이 다 뛰어났기에. 영민이, 성화, 주완이.

 군대란, 참 이상한곳이었다. 자기들만의 룰을 만들고 자유를 억압하는게 당연하다고 여겨지며 궁금한것에 대해 질문을 하는것조차 개념없다고 여겨지는곳. 그 집단에 속해있으면서 그런것들에 대해 당연하게 여기고 나도 어느새 내 후배들에게 강요하게 되는곳. 그리고 거기서 배운것들을 군대이후에도 당연하다는듯이 적용하게 되는것. 회사에 있으면서 선배가 어떤 물건이든 들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제가 들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자신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사회의 상명하복의 병폐도 다 군대의 연장선이겠지.

 신병의 자리는 내무반에서 제일 문에서 가깝고 TV에서는 제일 먼 자리였다. 문을 기점으로 양면에 침상들이 있고 가운데 통로는 복도와 연결된 통로. 그 침상에 허리는 꼿꼿이 손은 주먹을쥐고 무릅에 각잡고 앉아있으면서 졸지도 말아야되며 TV를 보려고 고개를 돌려도 안되며, 티비소리에 웃어도 안되고 그냥 멍을 때려도 안되는게 신병의 자세였다. 몇시간이고 아무일도 없이 가만히 앉아있는게 얼마나 힘든지... 그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졸려하는 모습이 보이면 '빠졌네' 라는 선임들의 얘기가 들리고 낙인이 찍히는것이다.

기억나는 상황1. 내무반을 배치받고 나면 인적상황을 기재해야한다. 당시 각 내무반에는 행정을 담당하는 사병이 존재했는데 상병의 일정시기가 되면 그 일을 맡고 몇개월간 했어야됐었다. 내가 신병일때의 행정병은 성격 더럽기로 유명한 사마귀를 닮은 모상병. 인적사항을 기재하다가 뭐라고 적을지 몰라서 질문했더니 어이없다는식으로 빤히 노려본 기억이 난다. 질무나는것자체가 버릇이 없단다.

 나는 보급병이었다. 우리는 보급병이었다. 군수사였으니.
군수사령부에는 각 물자별로 창고를 나눠어놓고 창고를 1B, 2B 라고 호칭하였다. 나는 그중에서도 힘들다고 소문난 2B에 배치되었다. 2B가 힘든이유는 다른게 아니라 전투화, 전투복, 비누등등의 일반물자를 담당하였고 한번에 들어오는 물자의 양이 엄청났다. 한번 물자가 들어오면 갯수로 적게는 몇천에서 몇만개가 들어왔으며, 물건을 놓을자리를 창고내에서 확보하고(이미 많이 불출된 물건을 다시 최대한 높게쌓아 빈공간을 만들었다) 새로운 들어온 물자를 키 높이의 3-4배의 높이로 쌓는다. 이 과정이 완전 노가다이다. 일을 도와주시는 인부분들과 일을 나누어하긴했지만.
 처음 내게 배정된 창고는 2B창고가 아니었다. 외곽지역에 있는 다른 창고였다. 신병을 테스트해본다고 나와 주완이가 그 창고에 인사하러갔는데 그 때 당시는 몰랐지만 창고주임과 선임들은 나를 점찍었다고 했다. 왜냐하면 주완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덩치가 컷기에. 하지만 그 판단은 족구 한게임에 완전히 바뀌었다. 주완이는 지금 생각해도 참 열정적인 동기였다. 그게 일이든 운동이든. 빠릿빠릿하고 몸을 아끼지않았다. 나라도 그랬을것이다. 나와 주완이라면 당연히 주완이.
 뭐 과정이야 어쨌든 2B에서의 생활은 나쁘지않았다고 본다. 2B의 선임들은 배울점이 많았다. 인간적으로든 업무적으로든. 한명 빼고.
 지금은 다들 이름이 기억나지않는다. 최성인병장은 창고에서 바로 내 맏고참이었고 내가 개인적으로 존경하기에 기억이 남지만.